간음하다 잡혀온 여인 요한복음8:1-12

 

신약 성경에는 과거에 불행한 삶을 살았지만, 예수님으로 인해 가장 행복한 삶을 살게 된 두 여인이 있습니다. 한 여인은 남편이 다섯 명이나 되었던 사마리아 수가성의 여인 이었고, 또 한 여인은 간음 하다가 현장에서 잡혀 많은 사람들 앞으로 끌려나온 여인입니다. 두 여인은 예수님을 만남으로써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행복한 삶을 살았습니다. 특히 본문은 그 중 한 여인 간음하다가 잡혀온 여인의 이야기입니다. 당시 이 여인이 겪은 수모와 모멸은, 대낮에 물을 길러 우물로 왔던 사마리아 여인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고통스러운 것이었습니다. 간음 혐의로 뭇사람들 앞으로 끌려나와 인민재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8:3) 이 여인은 간음 하다가 현장에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잡히는 바람에 변명의 여지도 없이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았습니다. 이 여인은 사람들에 의해 밖으로 끌려 나왔습니다. 영화나 뉴스를 보면 이슬람 국가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것을 봅니다. 이 여인은 돌로 쳐 죽이려 둘러 서있는 많은 사람들 한 가운데 있습니다.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깊은 상처를 받았을 것입니다. 그 순간 수치, 공포, 절망, 죽음까지 경험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삶에서 사망의 골짜기와 같은 순간들을 지나게 됩니다. 본문에서도 사망의 골짜기와 같은 순간을 겪은 이 여인을 봅니다. 오늘그녀가 경험한 죽음과 부활의 새 삶을 소개하며 은혜 받고자 합니다

1.그녀가 경험한 죽음의 의미를 묵상합니다.

이 여자는 당시의 율법에 비추어 마땅히 죽었어야 할 사람이었습니다. 구약 율법에 근거해 사형에 해당되는 간음한 여인이었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남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 곧 그의 이웃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는 그 간부와 음부를 반드시 죽일지니라.”(20:10)

어떤 남자가 유부녀와 동침한 것이 드러나거든 그 동침한 남자와 그 여자를 둘 다 죽여 이스라엘 중에 악을 제할지니라.” (22:22)

이 여인이 현장에서 발각되어 예수님께 끌려온 것입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8:3-5).

여인에 대한 판결은 예수님의 딜레마였습니다. 그 딜레마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율법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러 오신 분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갈라디아서 3:13절에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예수님은 율법의 공의를 실현 시키고자 그녀가 받아야할 저주를 대신 짊어지시고 그가 저주 받기로 작정 하셨습니다. 그것이 십자가 사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용서는 결코 값싼 용서가 아닙니다. 본문 11절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 하노니라는 용서를 선언 하십니다. 이 선언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이 여자의 죄와 저주를 대신 짊어지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실 때 이 여자도 거기서 죽은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죽은 것입니다. 그 안에 예수님의 목숨을 드린 대속적 죽음(10:45)에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그녀가 경험한 죽음의 의미는 예수님의 십자가가 담겨 있음을 묵상해야 합니다.

2.그녀가 경험한 부활의 의미를 묵상합니다.

간음하다 잡혀 온 여인은 죽지 않고 살았습니다. 실상은 죽음에서 부활한 셈입니다. 본문 11절에서 예수님은 이 여인에게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는 새 삶을 선언합니다. 이 여자가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않는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 위한 부활의 선언인 것입니다. 이 선언은 간신히 죽음을 면했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는 새로운 삶을 사는 것이 여인을 향한 선언입니다. “예수는 우리가 범죄 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4:25) 주님의 죽음은 우리의 죄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지고 대신 죗값을 지불함으로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기 위한 죽음 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부활은 우리가 죄만 용서 받는 자가 아닌, 의롭다함을 선언 받고 하나님의 의 가운데서 살아가기 위한 부활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6:4) 여기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부활하신 더 중요한 이유가 선포됩니다. 우리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그 새 생명 가운데 살아가야 합니다.

그녀가 경험한 부활의 의미는 이렇습니다. 예수님께로 왔다면, 새 생명을 얻었다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서 새로운 삶을 살아야한다는 것입니다(고후5:17).

간음하다 잡혀온 여인은 우리 모두의 모습입니다. 여인에게 주신 죽음과 부활의 참의미를 묵상함으로 더 이상 어둠에 다니지 말고, “세상의 빛되신 주님을 따르십시오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