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의 겸손과 그가 증거 한 예수님 요한복음3:22-36

오늘 우리 사회는 더 이상 자신을 있는 모습 그대로 드러내거나 혹은 스스로를 낮추는 겸손을 칭찬하지 않고 교만한 사람들이 오히려 진취적인 사람으로 혹은 성공한 대상으로 간주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언제나 일관성 있게 교만을 정죄하고 겸손을 높입니다.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벧전5:5) 왜 하나님은 교만한 삶을 대적 하실까요? 성경은 교만의 근원이 마귀라고 말씀 합니다. 반대로 겸손의 근원은 예수님 이십니다. 예수님은 친히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11:29)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보다 앞서 오셔서 예수님을 증거 한 예수님을 가장 닮은 사람 한 분을 소개합니다. 그가 바로 세례 요한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가리켜 여자가 낳은 자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11:11) 세례 요한이 이렇게 위대한, 겸손의 사람이 될 수 있었던 비밀은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1. 하나님의 주권적 은사를 이해함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26절에서 사람들은 경쟁심 혹은 질투심의 말로 요한을 자극합니다. “그들이 요한에게 가서 이르되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요단 강 저편에 있던 이 곧 선생님이 증언하시던 이가 세례를 베풀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 요한은 하나님의 주권적 은사에 대한 이해가 있었기에 오히려 그는 사람들을 향하여 겸손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27)

하나님은 하늘나라의 뜻을 이루고자 이 땅에서 일하는 일군들에게 각각 다른 다양한 은사들을 주셔서 그분이 그런 사역을 진행하는 것이라고 대답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세례요한의 인격의 크기였던 것입니다. 이런 요한의 겸손의 배후에 있었던 믿음은 하나님의 주권적 은사에 대한 신뢰 때문 이었다고 생각 합니다. 성경에 보면 성령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자신의 뜻을 따라 여러 가지 다른 은사를 주신다고 기록 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12:6) 은사란 하늘의 선물입니다. 하나님은 하늘나라의 뜻을 이루고자 이 땅에서 일하는 일꾼들에게 각각 다른 다양한 은사들을 주셔서 사역을 진행 하십니다. 우리는 내게 주신 은사를 따라 내 몫의 사역을 감당하면 됩니다. 각자 자신의 은사를 따라 성실하게 살면 그것으로 족할 수 있지만 우리가 남의 은사를 질투하기 시작한다면 그때부터 우리의 가능성은 오히려 제한이 됩니다. 세례요한은 하나님의 주권적 은사를 수용하였기에 예수님의 신실한 증언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2. 자신의 소명적 위치를 이해함 때문입니다.

 요한의 겸손을 이해하는 두 번째 열쇠는 그가 자신의 소명적 위치를 이해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말한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언할 자는 너희니라”(28)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분명한 이해를 가지고 있었음을 확인 할 수 있는 장면입니다.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29) 세례요한은 신랑의 친구, 즉 들러리로 만족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의 역할을 들러리로 부르셨다면 들러리로 만족 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모든 사람이 다 신랑이 될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소명은 부르심입니다. 나를 향한 하늘의 부르심이 무엇인가를 알고 그 역할에 충실함으로 느끼는 보람, 이것이 한 사람의 가치를 진지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그의 소명이 예수님의 오실 길을 준비하고 그분을 높이는 일인 것을 안 사람이었습니다. 30절 말씀에 나타난 그의 위대한 고백을 보겠습니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그는 마침내 참수형을 받아 자신의 목숨을 순교의 제물로 드리게 됩니다. 예수님이 이런 요한을 여자가 낳은 자 중 가장 위대한 사람이라고 말한 것이 이해가 되실 줄 믿습니다.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자신이 성부 하나님과 동등이셨으나 삼위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2:6-8) 이렇게 죽기가지 복종 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진정한 겸손의 의미를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의뜻을 이루고자 죽기가지 자신을 비우고, 낮추고, 복종하심입니다. 예수그리스도야말로 그런 완벽한 겸손의 인생을 사셨던 분이십니다. 예수님의 제자로 산다는 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11:29)고 말씀하신 그분을 따라 날마다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그분을 다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예수그리스도의 제자도는 아직도 우리가 이 예수님의 겸손을 배워야 할 필요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인물은 그리스도처럼, 그리스도의 제자 요한처럼 겸손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적 은사와 자신의 소명적 위치를 이해하여 우리 모두가 진정 위대한 겸손의 사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