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한 사람만이 역사에 기여하고 사회에 기여하고, 하나님의 나라에 기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됨의 의미는 단순한 생존이 아닌 성숙입니다. 생존을 넘어선 성숙입니다. 성숙에 의해서 우리는 단순히 존재하는 인간이 아닌 생성하는 인간/창조하는 인간’‘기여하는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그냥 하루하루 존재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인간으로 만들어져 가는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영적 성숙>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성숙한 사람도 먹어야 살고 마셔야 살고 입어야 삽니다. 그러나 성숙한 사람은 먹는 것, 마시는 것, 입는 것, 그 이상의 가치와 의미를 고민하여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가르치십니다. 마태복음632~33절 말씀 입니다.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기여하는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이 고민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는 <영적 성숙>입니다. 어떻게 우리는 영적 성숙을 이루어 기여하는 인생을 살 수 있을까요?

1. 자신의 은사를 사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은사를 헬라어에서는 카리스마라고 하는데 이 단어의 어근은 카라(Kara)로서 기쁨이란 뜻을 갖습니다. 은사를 세상에서는 재능이라고 말합니다. 은사 혹은 재능에 맞는 일을 하면 누구나 신바람이 나고 즐겁습니다. 은사는 아주 쉽게 표현하면 내가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두 가지가 다 만족되어야 은사라고 할 만 합니다.

본문 첫 구절 7절을 읽겠습니다.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이 은혜의 선물이 바로 은사입니다. 9-10절은 예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시면서 승리자로 이 땅 만물 가운데 주의 뜻을 충만하게 이루어 가시기 위해 당신의 사람들에게 은사를 주셨다고 말합니다. 11절은 구체적인 몇 가지 지도자들에게 주신 은사들을 열거합니다.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어떤 사람은 사도의 은사를 받아 교회가 개척되지 못한 지역으로 보내심을 받아 교회를 세우는 특별한 부르심을 받습니다. 오늘 날로 말하면 선교사와 같은 은사입니다. 어떤 사람은 선지자의 은사를 받아 예언의 말씀을 선포하고 말씀으로 주의 백성들을 경책하는 은사를 받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를 안 믿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예수를 믿게 하는 특별한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도 어떤 사람들은 이미 믿은 주의 백성들을 잘 가르치고 양육하여 세우는 목사나 교사의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밖에도 무수한 은사들이 있습니다. 저마다 자신의 은사를 알고 자기가 잘 할 수 있는 일로 기여할 때 자신도 삶의 의미를 경험하고 또한 세상도 변화를 받는 것입니다.

2. 자신을 넘어 서로를 섬길 줄 알아야 합니다.

은사를 사용한다고 말할 때 가장 유의해야 할 일이 있다면 은사 사용이 자기만족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기독교 사역의 궁극적인 대상은 일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우리는 일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섬기는 것입니다. 만일 내가 내 은사를 발휘하여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 사람들을 상처 낸다면 그는 기독교 사역의 목표를 아직도 이해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섬기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 전문성이상으로 영적 성숙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12절 말씀은 바로 이런 기독교 사역의 본질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온전하게 한다.’는 것은 헬라어에 ‘katartismos'인데 이 단어는 본래 의학적인 술어로 뼈를 맞추어 제자리에 있게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이웃들을 잘 회복시켜 그로 하여금 참된 봉사자의 자리에 서게 하는 일이 사역의 본질입니다. 기독교 사역은 숫자적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곁에 있는 한 사람, 한사람을 나의 은사, 내가 할 수 있는 일로 섬겨 그의 영적인 회복을 돕는 것이 사역입니다. 그런데 만일 내가 사역의 이름으로 이웃을 상처내고 있다면 영적 성숙이 이루어지기까지 차라리 사역을 유보하는 것이 낫습니다. 오늘 이 세상에는 상처받은 수많은 사람들이 영적 회복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누가 그들을 섬기는 천사가 될 수 있겠습니까?

3. 자신을 넘어 공동체를 세울 줄 알아야 합니다.

12절의 우리가 우리 이웃들을 온전하게 하는 섬김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입니다. ‘세운다는 말은 영어로는 빌딩(building)입니다. 세우는 것 곧 빌딩의 반대가 무엇입니까? ‘허는 것곧 파괴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교회답게 세워질 때 교회는 세상의 소망이 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공동체 내에서 섬김을 수행할 때 끊임없이 물어야 할 질문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의 섬김으로 우리 공동체가 좀 더 든든하게 좀 더 아름답게 세워져 가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일을 빙자한 섬기는 방식의 무례로 인하여 공동체가 흔들리는 몸살을 앓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공동체의 세움을 위해 나 혼자만 일을 잘하는 것이 아니라, 네트워킹의 지혜 곧 팀워크의 기술을 또한 익혀야 합니다. 본문의 마지막 구절의 교훈이 그것입니다.

16절입니다.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바울 사도는 다시 이런 아름다운 연합을 위해 다시 한 번 성숙의 중요성을 선행 구절에서 강조합니다. 15절입니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바울은 여기 이런 성숙을 위해 사랑과 참된 행함’(진리의 행함)의 균형을 강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