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되게 하신 것 에베소서4:1-6

예수님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 영향을 끼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그의 제자 된 성도들이 하나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지상에서의 마지막 기도 중에 하나 되게 해 달라는 그리스도인의 일치가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신 것을 기억하십니까? 요한복음 1721절 예수님의 기도 입니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우리 성도가 먼저 하나가 되지 못할 때 어떻게 세상이 우리의 증거를 신뢰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사도바울도 그의 교회관을 피력하는 이 중요한 에베소서 서신을 기록하며 성도들의 하나 됨의 중요성과 실천을 가르치고자 하셨습니다.

이미 2장을 통해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한 권속(가족, 2:19)이 되었다고, 3장을 통해 우리들 성도들은 한 몸이신 그리스도에 함께 속한 지체(:3:6)가 되었다고 말씀한 바 있습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이 하나 됨을 깨트리지 않고 성도의 진정한 일치와 연합을 이루어가는 일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본문의 화두를 3절에서 이렇게 열고 있습니다.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이런 성도의 하나 됨을 지키고 이루어 가는 비밀은 무엇일까요?

1.그리스도의 성품을 학습하는 일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하나 됨을 이루어 가는 그리스도의 성품으로 4가지를 특히 지적하고 있습니다. 1-2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우리가 교회 공동체에 속한 자로서 주의 소명 즉 부르심을 이루어가기 위한 그리스도인의 기본적 자질로서의 성품 4가지 무엇입니까? 겸손과 온유, 그리고 오래 참음과 사랑의 용납입니다.

성도의 교제가 깨어지는 아픔을 겪을 때마다 반드시 관찰되는 공통적 현상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중에 누군가가 겸손하지 못했고, 누군가가 온유하지 못했고. 우리 중에 누군가가 오래 참지 못했고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서로가 서로를 사랑으로 용납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 4가지 성품은 모두 우리 주님 그리스도의 인격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성품들이었던 것을 기억하십니까? 그분은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마태11:29)”고 말씀하신 분이 아니십니까?

실로 우리 예수님은 주님을 체포하러 온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제자 중 한 사람이 칼로 베자 그 귀를 붙여주고 낫게 하시며 이것까지 참으라(22:51)”고 말씀하신 인내의 주님이셨습니다.

그는 십자가의 고통을 감수하시며 자신을 못 박는 로마의 군병들도, 자신을 져버린 동족들도, 그리고 스승을 배신한 당신의 제자들까지도 사랑으로 품고 용납하신 분이셨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가 이런 그리스도의 성품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까?

이것이 단순한 도덕적인 성품 학습만으로 가능한 작업이겠습니까? 아닙니다. 사실 이 해답은 바울은 5장까지 미루어 둡니다. 그 해답은 에베소서 518절의 성령 충만 입니다. 우리가 성령 충만하면 성령의 지배를 받습니다. 성령의 지배를 받으면 성령의 열매를 맺습니다. 성령의 열매가 무엇입니까?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5:22-23)” 여기 열매는 단수로 되어있고 이 열매들은 한 인격 곧 예수님의 성품을 지향한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 이 열매 중에 바울이 에베소서 본문에서 언급한 겸손과 온유, 오래 참음과 사랑의 용납이 다 들어있지 않습니까? 우리 인생 속에 이런 성품이 작동한다면 우리가 용납하지 못할 사람, 사랑하지 못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성령 충만을 사모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성품을 우리 안에 날마다 이루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그리스도의 성품이 작동되고 학습되기 위해서도 우리는 그 무엇보다 날마다 성령 충만을 사모해야 합니다.

2.삼위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사는 일입니다.

사도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이 굳건한 교제 중에 머물러 있어 세상을 향한 복음 증거의 소명을 감당하기 원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로마 감옥에 수감되어 있기에 다시는 이 도시를 방문할지 모른다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는 에베소 성도들이 자신들을 성도로 부르시고 교회의 지체가 되게 하신 분은 바울이 아닌 삼위 하나님이신 것을 기억하고 살아주기를 소원한 것입니다. 4절을 읽겠습니다.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바울 사도는 이런 성령의 역사를 통해 우리가 예수를 믿게 되고 그를 우리의 한 주님으로 고백하게 되었다고 5절에서 증거 합니다. “주도 한 분이시오 믿음도 하나요. 침례도 하나요먼저 성령이 우리에게 오셔서 죄를 깨우쳐 예수 믿게 하시고 이제 우리는 성자이신 예수를 주로 믿게 되었고 이제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신 성부를 우리의 아버지로 부르고 고백하며 그가 만유 가운데 모든 뜻을 이루실 것을 소망하며 살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6절입니다.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우리가 한 성령의 부르심을 받고 사는 성도라면, 그리고 그 성령의 역사로 한 분 성자 예수를 동일하게 주로 고백하고 살게 되었다면, 성자 예수님을 통해 예수의 아버지이신 성부 하나님을 만유와 역사의 섭리자와 완성자로 믿고 바라보고 사는 우리가 되었다면 우리 성도들이 하나 되어 살지 못할 이유가 어디에 있느냐는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삶의 현장에서 이런 큰 그림을 보지 못하고 사소한 것에 집착할 때 우리는 지금도 여전히 서로 간에 불필요한 벽을 만들고 살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위대한 일들은 우리의 좁고 이기적인 마음들 때문에 지체되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