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의 기도 에베소서3:14-21

에베소서를 가득히 채우는 중요한 단어 둘이 있습니다. 하나는 풍성이고 또 하나는 충만 입니다. 풍성하고도 충만한 삶 그것이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 이어야 한다고 바울은 이 서신을 통해서 가르치고자 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어떻게 우리가 이 풍성하고도 충만한 삶 속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그 열쇠가 바로 그리스도의 사랑이라고 바울은 말합니다. 그래서 그 사랑의 비밀을 알고 깨우치도록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에게 이 편지를 쓰고 또 그들을 위해 기도한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만 깨우치면 그들은 왕의 자녀 된 놀라운 삶의 자리에 있게 될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면 그런 그리스도와의 사랑 속에 우리가 어떻게 들어갈 수 있을까요?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을 향하여 자기가 기도하고 있는 내용을 말함으로 교훈하고 있습니다.


1. 그리스도와의 사랑의 전제-속사람의 강건함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때로 어떤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어도 그 사랑을 받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으면 그 사랑을 액면 그대로 받지 못하는 모습들을 목격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사랑을 받는 그릇입니다. 여러분은 보석을 종이그릇이나 비닐 그릇에 담아 우리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전달할 분이 계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할 에베소 성도들의 속사람을 위해서 먼저 기도합니다. 16절입니다. “그의 영광의 풍성을 따라 성령으로 말미암아-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지금 이 기도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아버지께 드려지는 기도입니다. 선행하는 본문 15절에서“-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하여 하늘 아버지께 드리는 청원의 기도입니다.

바울 사도는 자신은 인생의 노년을 앞두고 “-겉 사람은 낡아지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고후4:16)”고 고백합니다. 어떻게 우리의 속사람이 우리의 세월과 상관없이 새로워질 수 있단 말입니까? 그 해답이 오늘 본문에 있습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입니다. 성령 충만하면 속사람이 새로워집니다. 죽음이 두렵지 않고 인생이 세월이 더할수록 더 놀라운 감격과 감사의 삶으로 다가옵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사모하십시오. 이런 사람들이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을 줄 아는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2. 그리스도와의 사랑의 체험 - ‘그리스도의 주인 되심으로 시작됩니다.

우리의 속사람의 그릇이 준비되었으면 이제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삼는 삶을 체험 하셔야 합니다.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의 최대의 삶의 문제는 예수를 구주로는 믿었지만 예수가 아직도 그들의 삶의 주인이 되어있지 못하다는 비극입니다. 본문 17절을 보십시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여기 계신다는 단어는 그리스도가 단순히 우리 마음에 존재하신다는 의미가 아니라, 우리 마음의 왕자에 자리 잡고 다스린다는 의미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그리스도가 주인 되어 우리를 다스리실 때 ”-우리가 사랑 가운데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진다(17).“고 말합니다.

나무는 뿌리가 깊을 때 열매를 맺고, 건물은 터가 견고할 때 높이 빌딩을 세울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열매가 없고 쉽게 흔들리는 이유는 아직도 주님의 사랑 안에 우리의 삶이 뿌리박지 못하고 터를 자리 잡지 못한 까닭입니다. 무엇을 해야 할까요? 그리스도의 주인 되심을 인정하고 온전히 그에게 순복하셔야 합니다.


3. 그리스도와의 사랑의 성숙 -‘그 사랑의 스케일을 깨달음에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진실로 주님의 사랑 안에서 세워져가려면 그분의 변함없고 진실하신 그 사랑을 온전하게 깨달아야 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에게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라(18)”고 권면합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19절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를 깨달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종종 젊은 청년들이 사랑에 빠지면서 인생의 모든 것이 송두리째 변하는 모습을 목격합니다.

인간의 사랑도 그런 능력이 있다면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최고 최대의 사랑인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얼마나 변할 수 있을까요?

생각해보십시오. 그리스도의 사랑의 너비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그 사랑은 세상 전체를 끌어안을 수 있을만한 넓은 사랑이 아닙니까? 존 스토트는 그의 사랑은 서로를 원앙(원수+앙숙)으로 대하는 유대인과 이방인을 함께 품에 안을 만큼 넓은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그의 사랑의 길이는? 성경은 그의 사랑이 영원까지 이어갈 수 있는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그 사랑은 결코 멈출 수 없는 사랑, 변질될 수 없는 사랑입니다. 그의 사랑의 깊이는? 저 무저갱의 심연에 더져질 만큼 타락한 죄인을 위해 음부의 깊은 곳까지 자비의 손을 내미시는 사랑입니다. 그의 사랑의 높이는 지옥에 던져 마땅한 죄인을 죄의 수령에서 끌어올려 저 높은 하늘의 보좌 앞에 죄인을 보혈로 씻어 드리는 사랑입니다. 이 사랑으로 우리가 충만하면. 그의 사랑의 임재로 충만하면 우리는 아마도 아빌라의 테레사처럼 주님, 이제 아무것도 더 원함이 없습니다. 당신으로 족합니다. 저는 이제 충분하고 충만합니다.”고 말할 것입니다.

19절을 다시 한 번 읽어보시겠습니다.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여기서 바울의 간구는 끝나지 않습니다. 이 장의 마지막을 바울은 하나님이 우리의 생각과 기대를 넘어서서 우리의 존재와 삶을 그의 충만하심으로 채우실 것이라는 찬양 곧 송영으로 말미를 장식합니다.

20-2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하실 이에게 (21)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