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의 감사와 기도 1:15-23

오늘의 본문에서 바울 사도는 그가 사랑했던 에베소 교회 성도들을 향한 그의 기대를 고백합니다. 그의 기대를 기도로 말합니다. 성도들의 기대의 표현은 언제나 기도입니다. 자식들을 향한 기대가 있다면 우리가 그것을 기도로 말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이 바울사도의 에베소 교회 성도들을 위한 기도의 본문에서 우리는 그의 기대를 발견하게 됩니다. 본문에 나타난 이 기대는 실로 모든 시대의 성도들이 우리 서로를 향하여 가져야 할 가장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기대를 포함하는 것입니다. 우리 서로를 향하여 가져야할 가치 있는 기대와 기도는 무엇일까요?

1.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가는 일입니다.

17절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지금 바울은 에베소의 성도들이 하나님을 진정 알게 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의 앎이란 피상적인 정보나 지식을 뜻하는 말이 아닙니다. 구약에서 사용된 히브리어로 표현하면 (yada) 입니다. 예컨대 아담이 그 아내를 알았다고 말할 때 그것은 깊은 관계에 들어갔다는 의미입니다.

마찬가지로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이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통하여 그를 알게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알아가는 영적 성숙이 없이 삶의 진정한 만족도 충만도 없을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풍성하고 충만한 삶입니까? 한마디로 우리의 창조자이신 하나님과의 깊은 사귐 속에 그를 알아가는 인생인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무엇으로 무한하시고 전능하시고 절대자이신 하나님을 깊이 알아갈 수 있습니까? 17절을 다시 보면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했습니다. 성령은 지혜의 영이시고 계시의 영이십니다. 성령의 도움이 없이 우리는 그를 알아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은 단순한 지적 작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210절을 보십시오. “오직 하나님의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 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그래서 바울 사도는 우리가 하나님을 깊이 알기 위해서는 에베소서 5장에 가서 무엇보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2.우리의 영적인 눈이 밝아지는 일입니다.

우리가 서로를 향하여 가져야 할 또 하나의 기대는 우리의 영적인 눈이 밝아지는 일입니다. 18절이 그렇게 시작되지 않습니까? “너희 마음눈을 밝히사-”성도의 마음눈이 밝아지면 세 가지가 보인다고 말합니다. 이 세 가지가 보이면 우리의 인생은 어떤 상황, 어떤 환경 속에서도 당당해질 수가 있고, 풍성하고 충만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가 무엇일까요? “소망과 영광과 능력입니다. 이것들이 바로 우리 성도들을 위해 예비 된 것을 볼 수만 있다면 우리는 주눅들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들을 보는 눈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좌절하고 절망하고 낙담하는 것입니다. 18-19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너희 마음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절망의 반대가 무엇일까요? 소망입니다. 사람들이 절망하는 것은 소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자살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살아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살아야 할 이유가 바로 소망이 아닙니까! 그런데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예수를 믿는 순간 우리에게 어떤 경우에도 사라지지 않는 소망이 우리 안에서 태어난다고 말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그것을 산 소망이라고 말합니다. 죽을 수 없는 소망, 없어지지 않는 소망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천국의 소망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 천국의 소망은 막연하게 우리가 죽으면 천국 간다는 식의 소망만이 아니라, 우리가 목말라하며 추구하던 모든 가치들이 완벽하게 실현되는 영적 풍성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의 본문은 이런 기업의 영광의 풍성’, 우리에게 상속 주시고 자 예비하신 부요함을 우리가 이 땅에서부터 누리가 살 수 있도록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던 부활의 능력으로 오늘의 우리와 함께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소망, 이런 풍성함, 이런 능력이 함께 한다는 것을 우리의 눈이 열려 볼 수만 있다면 우리의 인생을 사는 자세는 얼마나 당당하겠습니까?

3.교회 사역의 영광을 깨닫는 일입니다.

본문의 22-23절은 그 이해가 쉽지 않은 말씀입니다. “또 만물을 그의 발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 이니라.” 에베소 성도들을 향한 기대를 모아 그들을 위해 기도하던 바울사도가 여기서 갑자기 마지막 대목에서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를 말한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이 부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유진 피터슨의 번역 (메시지)에서 읽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교회는 세상의 변두리가 아니라, 세상의 중심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분은 교회 안에서 활동하시며 교회를 통해 만물을 자신의 임재로 가득히 채우십니다.”(유진 피터슨, 메시지)

초대 교회는 지금의 교회와 비교한다면 정말 한 줌의 세력도 안 되는 미미한 공동체였습니다. 특별히 당대의 세상을 지배하던 로마의 권력과 비교하면 정말이지 교회는 초라한 핍박받는 공동체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는 교회가 세상의 변두리가 아닌 세상의 중심이라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 교회를 통해 하나님은 만물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 예수께서 사용하시는 공동체의 한 지체로서 살아감이 얼마나 놀라운 영광스러운 특권인가를 일깨우고자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