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도바울에게 당신의 생애를 통해 가장 의미 있는 사역이 무엇이었느냐? 고 묻는 다면<두란노서원 사역> 이라고 대답 할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처음 회당에서 3개월 그리고 두란노 서원에서 2년여 모두 약 3년의 사역(3차선교여행 기간 AD53-57)을 펼쳤던 곳이 바로 에베소라는 도시였습니다. 당시 에베소는 소아시아의 중심도시였고 사역의 결과는 사도행전 19장의 증언처럼 온 아시아에 복음적 영향을 끼쳤던 것입니다. 이 에베소 사역이후 사도바울은 자신의 조국 이스라엘 예루살렘으로 잠시 돌아갑니다. 그리고 거기서 복음을 전하다가 체포됩니다. 그는 로마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로마의 가이사 황제에게 최종적인 재판을 받기위해 가이사랴 항구에서 압송되어 배편으로 로마로 오게 됩니다. AD60년대 초기 바울은 로마의 감옥에 있었지만 바울의 관심은 자신의 안위나 편안함이 아닌 에베소 교회에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에베소 교회가 굳게 서야 아시아를 변화시키는 희망 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에베소 교회를 향하여 편지를 씁니다. 그것이 바로 에베소서입니다. 에베소서의 핵심은 교회론 입니다. 교회가 교회다울 때 교회는 진정한 세상의 희망이 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는 아직도 어린 교회 에베소교회를 향하여 교회가 대체 무엇인가를 가르칩니다. 우리는 에베소서의 서론인 1-2절에서 벌써부터 교회의 본질과 우리 자신을 규명하는 정의를 만나게 됩니다. 교회는 도대체 무엇입니까? 우리는 누구 입니까? 나의 정체성(identity)은 무엇인지를 에베소서의 서론인 오늘 본문을 통하여 배워 보겠습니다.

1. 교회는 성도들의 공동체입니다.

1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예수의 사도된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하노니여기서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두 가지 별명을 사용합니다. 그들은 성도이며, 동시에 신실한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이 성도들과 신실한 자들의 공동체인 에베소 교회를 향하여 편지를 쓴다는 것입니다. 두 가지, 성도와 신실한 자라는 표현은 흔히 어떤 사람들의 도덕적 특성을 묘사하는 단어로 오해되기 쉬운 단어들입니다. ‘성도는 본래 영어로는 saints ‘성자로도 번역되는 단어인데 본래 언어인 헬라어의 뜻은 구별된 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특별하신 목적으로 사용하고자 구별한 사람들, 영어로 다시 풀어말하면 ‘set apart’란 의미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의 선택에 의해 부름을 받은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것이 성도됨의 의미입니다. ‘성도가 이 땅의 많은 사람들 중에 하나님이 우리를 구별해 주신 사역을 강조하는 단어라면, ‘신실한 자들이란 단어는 인간 편에서 그 하나님을 믿은 자들이란 뜻입니다. 교회는 본래 헬라어에서 에클레시아라는 단어로 표기됩니다. (ek)(-부터, from)이란 의미의 단어와 (kaleo)(부름을 받는다, call)라는 합성어입니다. 세상으로부터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세상에서 나와 하나님께 속하게 된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에 성도신실한 자의 의미를 추가한다면 교회는 하나님을 부르심으로 세상으로부터 구별된 믿는 백성들의 공동체라고 할 것입니다. 그것을 더 단순하고 쉽게 말하면 (성도들의 공동체)라고 할 것입니다.

2.교회는 은혜의 공동체입니다.

바울 사도는 2절에서 에베소 성도들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라고 인사를 건네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인사에 사용된 두 개의 단어에 교회의 본질을 설명하는 단어들이 등장합니다. 하나가 은혜이고 또 하나가 평강입니다. 본래 은혜라는 단어는 희랍인들이 가장 중요시하고 사모하던 가치의 단어였고 그래서 희랍인들의 인사에 사용되던 단어였습니다. 반면 평강은 히브리인들이 가장 중요시하고 사모하던 가치의 단어로서 그들의 인사에 사용되던 단어였습니다. 그런데 복음에는 희랍인들과 히브리인들이 갈망하던 모든 것이 다 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은혜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은혜는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베풀어지는 사랑이나 호의를 뜻하는 말입니다. 세상은 이런 은혜를 알지 못합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교회는 바로 이런 은혜 위에 세워진 은혜의 공동체인 것입니다. 교회의 변질은 이런 은혜의 감격을 상실할 때 일어나는 것입니다.

3.교회는 평화의 공동체입니다.

세상은 진정한 은혜를 알지 못하고 진정한 평화도 알지 못합니다. 참된 은혜와 평화의 근원은 오직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평화를 말하고 평화를 추구하고 평화를 흥정해 왔지만 평화를 우리에게 제공하지 못했습니다. 인류의 인류 평화를 향한 노력은 박수 받을 만한 것이고 고무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런 인위적인 추구로 평화가 이 땅에 정착하리라는 허상에서 우리는 벗어나야 합니다. 왜 인류 평화의 노력이 제대로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일까요?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의 말을 빌리자면 평화를 상실한 원인을 제대로 진단하지 못하고 있는 까닭입니다. 그것은 성경 외에서는 결코 답을 얻을 수 없다고 그는 말합니다. 성경은 인류가 애당초 평화를 상실한 원인이 죄 때문이라고 가르칩니다. 죄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불화하게 했고 인간과 인간 사이를 낸 것입니다. 죄가 들어오는 순간 처음 사람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을 피아여 숨고 그를 두려워하기 시작했으며 그의 임재를 피해 도망했습니다. 그리고 아담과 하와는 서로를 불신하고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비난하고 다투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문제가 어떻게 해결될 수 있습니까? 에베소서 213-14,16절에서 우리는 그 해답을 발견합니다. 그렇습니다. 십자가가 해답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인간은 하나님과 비로소 화해하는 평화를 경험하게 되었으며 이 중보자 예수를 받아드린 사람들은 이 복음 안에서 한 몸을 이루게 된 것입니다. 교회는 바로 이 평화의 복음을 전하고 평화를 나누는 공동체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