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능력은 언제나 전능합니다.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을 백으로 해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끄집어내서 사용하는 수표가 바로 우리의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완전하시지만 문제는 우리의 삶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이끌어낼 수 있는 믿음에 달렸습니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해야 되겠다고 하는 것은 장애물이 많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안으로는 예루살렘 유다백성들의 완전한 포기와 무관심의 상태였습니다. 밖으로는 사마리아인들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벽재건을 강력히 방해했습니다. 또한 페르시아 왕의 신하들도 예루살렘 성벽건설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반대하는 입장을 취했습니다. 에스라 413절에 보면 그들이 아닥사스다 왕에게 올린 조서에 손해가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믿음은 인생에 장애물이 있고 방해가 있어도 거기에 넘어지지 않고 극복하고 나가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을 움직이게 하는 방편이요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성도의 무기인 것입니다. 우리는 느헤미야처럼 용감무쌍한 믿음을 가져야 됩니다. 대담한 믿음을 가진 느헤미야의 믿음은 세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1. 대담한 믿음은 큰 위험(great risk)을 감수합니다.

큰 위험이 있어도 그 위험을 피하여 가는 것이 아니라 뚫고 지나가는 것입니다. 느헤미야의 직업이 아닥사스다 왕의 술맡은 관원장 이었습니다. 술맡은 관원장은 왕이 마시는 술이나 음식에 원수가 독을 타지 아니했는가를 감시하는 왕의 경호실장으로 왕이 최고로 신뢰하는 사람이어야 됩니다. 반대로 왕이 그를 잠시라도 의심하게 되면 그의 목숨이 위험하게 되는 자리입니다. 왕 앞에서는 절대로 슬픈 얼굴을 해서는 안되며, 언제나 기쁘게 웃고 행복한 표정을 지어야 되는 직업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느헤미야가 아닥사스다 왕 앞에서 슬픈 기색을 보인 것입니다. 성경에는 그것을 수색이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왕이 즉시 얼굴의 수색을 감지하고 물어봅니다. 느헤미야 22절에 네가 병이 없거늘 어찌하여 얼굴에 수색이 있느냐 이는 필연 네 마음에 근심이 있음이로다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이것은 술맡은 관원장인 느헤미야에게는 목숨이 날아 갈수도 있는 말입니다. 그러자 느헤미야가 2절 후반에 그 때에 내가 크게 두려워하여라고 그랬습니다. 느헤미야는 왕의 말 한마디에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므로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왕의 예루살렘에 대한 의도와 정책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그리고 노골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느헤미야는 지혜롭게 예를 다하여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라며 3절의 내용처럼 자신의 목숨이 위험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처한 상황에 대해 자세히 말하고 있습니다. 5절에 보니 종이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얻었사오면 이런 것을 좀 들어주시옵소서.”라며 겸손하게 예를 갖춰 말합니다. 이렇게 믿음이란 위험을 무릅쓰는 것입니다.

2. 대담한 믿음은 큰 부담(great burden)을 감당합니다.

느헤미야가 목숨 잃을 위험을 무릎 쓰고 왕 앞에 수색을 보이고 담대한 말을 한 것은 그에게 마음의 부담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의 조국 예루살렘에 성벽이 없도다. 그런데 그것을 세울 사람이 아무도 없고 바로 내가 세울 사람이다.”라며 성벽재건의 부담을 마음으로 갖고 그 부담을 피하지 않은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자신의 삶을 다 내려 놓고 하나님을 위한 위대한 사명을 감당하려고 마음의 부담과 결심을 가진 것입니다. 그는 일생일대의 큰 사명을 자청했습니다. 느헤미야는 이 사명이 자기 자신의 자원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원을 끌어들인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잊지 말아야 될 진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의 어떠한 모든 것도 그것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죽으면 다 다른 사람에게 넘겨줘야 되고 하나님께서 옮기는 데로 옮겨가야 되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믿음으로 주인의 것을 옮겨달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인이신 하나님이 옮기시면 얼마든지 옮겨질 수 있는 것입니다. 큰 믿음은 하나님의 자원을 끌어들이는 것입니다. 마음속에 큰 부담을 가지고 하나님의 자원을 끌어들여 전능하신 능력으로 그 부담을 이루어 보는 것이 큰 믿음인 것입니다. 비전이라는 것은 마음의 부담에서 생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런 부담도 없고 비전도 없는 사람은 비참한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큰 믿음은 하나님을 위해서 큰 부담을 마음에 갖는 것입니다.

 

3, 대담한 믿음은 큰 요구(great requests)를 합니다.

느헤미야는 아닥사스다 왕으로부터 성벽을 건축하라는 허락을 받는데서 만족하지 않고 더 나아가 성벽건축을 위해서 필요한 것을 구체적으로 조목조목 구하는 것입니다. 7절로 8절을 보십시오 느헤미야가 별 것을 다 요구합니다. “안전 보장도 책임져주시고 건축자재까지 주시옵소서.”라고 아주 조목조목 구체적으로 미리 외우고 있다가 다 요구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왕 앞에 나가서 요구를 할 때는 큰 것을 요구하는 것이 바른 예의입니다.

근대선교의 아버지로 불리는 침례교 선교사 윌리암 캐리하나님으로부터 위대한 일을 기대하라. 하나님을 위해 위대한 일을 시도하라(Expect great things from God. Attempt great things for God).”는 말은 언제 들어도 옳은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이시고 전능한 하나님이십니다. 시편 8110절에도 나는 너를 애굽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시요 우리를 사랑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 하나님의 그 에너지를 우리 삶에 끌어 들이는 것은 믿음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일에도 믿음으로 이겨나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육신이 병이 들어 어렵다거나 사업이 어렵다거나 가정이 어렵더라도 믿음으로 이겨나가십시오. 우리 자신의 생애와 우리 자녀들과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서 큰 것을 기대하고 구하시기를 바랍니다.